20080527

시민들의 정당은 가능할까

촛불 문화제가 문화제 참여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화해 나갈지는 전혀 알 수 없는게, 주도층이란게 딱히 없기 때문이다. 아고라에서, 디씨에서, 그리고 그외 여러 카페,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의견으로 수렴된다. 현장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 수렴과 결정이 반복된다. 물론 딱 떨어지는 지시가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질 지 몰라도 정보 누출의 걱정이 전혀 없고 (당사자들도 모른다),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이므로 결정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 이거야 사실 애초에 민주주의란게 의견 수렴과 결정이 그렇게 완벽히 작동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살짝 살짝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오류는 즉시 즉시 보완해가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루소가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제를 반대하고 경험적 의사를 중시해야한다고 말하는걸 예전에 읽었을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결정된다는걸까, 세상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너무 아이디얼하지 않나?

이제와서 이게 대충이나마 이해가 간다. 촛불 문화제를 경험하면서 약간이나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진 덕이다. 그것은 아마, 대충 지금같은 식의 의사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의견이 서서히 수렴되고 뭔가가 결정된다. 투표도 없고, 지시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결정되고, 동의되고, 실행된다.


생각해보면 1789년에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갈때 그 전날 밤에 누군가 소위 '지도층'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지시한건 아니다. 루소는 대혁명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학자다. 68년 5월은 이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어진 다음 과정에서 68년에 논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과 결정이 그래도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는 변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뚝뚝 떨어져가는데, 이게 반사적으로 다른 정당들의 지지율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들은 보수 우익도 아니고, 운동권 좌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좋은 나라에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은 '정치'에 대단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반감을 드러내는건 물론 모순된 행동이 아니라, 여기서 '정치'가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가 너무 없고, 권력을 두 손 가득 쥔 정치인들만 잔뜩 있는게 문제다.

몇개의 언론사와 대기업과 결탁된 수구 정당은 그들만 이익인 정책을 잔뜩 펼쳐보이고 있고, 노조나 시민단체 등 몇몇 운동권 세력이 결집된 정당들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고립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 야당이 된 저번 여당은 솔직히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생각은 하고 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본격적인 시민 정당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정당과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는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찾아오는 일은 4년에 한번 총선, 5년에 한번 대통령 선거때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며 지들 멋대로 하고 싶은걸 해댈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시민들에게는 소환권도 없고, 탄핵권도 없고, 쓸만한 참여 절차도 없으니 정치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구경거리라도 되면 괜찮지만, 직접적으로 생계에 위협까지 가하니 이건 정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자 비슷한 걸 몇년에 한번씩 뽑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되잖아 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기존 권력의 공고함과, 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관심을 가지고 쳐다봐야 맘에 그다지 안차는 대안들 중에 대체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정도에서 멈춘다. 맘에 드는 사람이 혹시나 있어도 당선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촛불 문화제가 이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구시대적 정치 세력들을 거부하고, 시민의 복지와 환경, 합리적인 이념의 조화, 시민들을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둔 본격적인 시민 정당이 가능할 시기,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의견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혹시나 그 와중에 구시대적 권력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소환시켜 버리고 하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시민 의식이라는게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건 가까운데 있는 지방 자치 단체급부터 시작해서 차츰 차츰 넓혀가는게 올바른 길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라는게 그다지 권한도 없고 딱히 와닿는 일을 하는 경우도 없고,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서 역시나 자기들 좋은 일만 해대는게 다반사인데다,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역시 국회부터 노리고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정치인이라는게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시민의 대행자라는걸 직접, 명확하게 느끼게 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물론 현실 정치라는게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저런 식의 작동 방식을 어떻게 고수해 나갈 수 있을지도 큰 문제거리다. 급박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저런 방식이 제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행정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익스퍼트들의 몫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초야에 뭍혀있을, 생각이 좀 올바른 사람들이 슬슬 기어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제대로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일도 있는데, 가끔은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만약 재협상 등의 의사를 관철해 낸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결과적으로 어떤 식의 결실을 맺을지 아직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그냥 잠자코 원래 자리로들 돌아가고 만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또 촛불을 들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게 될거다.

어쨋든 이 과정을 잘 겪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책에서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운 그들

약 15년전쯤에 전경들을 처음 본거 같다. 아니, 물론 그 전에도 본적이 있긴 하지만 뭔가 얽혀서 맞닥트린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하철 신촌역에서 올라오는 출구를 다 막고, 방패를 들고 일렬로 주르륵 서서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부르고, 빤히 쳐다보면서 가방과 학생증을 검사했었다.

피할 수 없음. 그때 그걸 느꼈다. 저들에겐 지금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망갈 곳은 없다.

그리고, 그리고. 숨이 막히는 매케한 연기로 가득찬 길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왠지 증오에 차 있었다. 대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뭘 향해서 분노하고 있을까? 알 수가 없었다. 그 중에는 사실, 대학 선배도 있었고, 아마 내 나이대에 입대한 동년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더구나 저 일이 끝나면 나와 별 다를 것도 없는 처지로 돌아갈텐데 대체 왜 저럴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러지는 않을텐데' 라는건 그들에게 정당한 요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미 개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선, 조직이기 때문이다. 조직. 그것도 공권력이라는 무인칭의 조직. 그것을 감성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건 훨씬 나중일이지만, 그들이 무서웠다.

전쟁터의 군인이 가지는 비인격성. 사실 인격을 가지면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테니, 아니 아예 전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테니 군인 비슷한 종류가 가지는 필연적인 속성이다. 전쟁을 반대하거나, 폭력을 반대하거나를 떠나서 그것들은 이미 존재한다. 적군을 동정하는 순간 총을 맞는다, 시위대에 동감하는 순간 방어벽은 무너질 것이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바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기서 그러고 있다. 아니 나 자신도 그 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변신하게 될 것이다. 변신하지 못하면 어차피 써주질 않는다.

나는 전경은 아니었지만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때 느끼는 그 거리감. 묘하다. 영미의 전후세대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전쟁이나 군대를 겪었다면 그들이 지금같은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질 때가있다. 이성이 사라짐을, 희미해짐을 겪어본다는건 견딜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다. 인식론에 관심이 많은 철학도여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방패를 주르륵 깔아놓고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걸 보면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생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가슴속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감이 스멀스멀거린다.

그런 무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내온 사람들이 그래서 부럽다. 공포감이 없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않고 돌진하지만, 그 속에 함께 있을때도 있지만, 역시 내 마음 속은 머뭇거리게된다.

아닌척해도, 솔직히 무섭다.

20080526

진화. 그리고 연대

관련한 이전 포스팅은 링크(클릭) 참조.

주말 이틀간 평화적 촛불 문화제는 거리 시위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순간적인 진화의 과정을 보고 있는건 경이로운 경험이다. 소수의 주체가 있지만 그것을 선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에 선동에 혹할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제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주체는 시민이고,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모이고있다. 애초에 정부 기득권도 좌파도 이 속도를 못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정부 측이 촛불 같은거에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는 계속 나타나고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지 바뀌어야할 시점이 요구되었는데 이렇듯 홀연히 찾아왔고, 시민들의 미시적 패러다임도 홀연히 변신하고 있다. 뭔가 더 해야한다는걸 깨닫고 있다.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지, 시민의 의지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고, 분열되고, 다시 진화하는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생생하게 보고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촛불 문화제와 길거리 투쟁, 즉 가투는 전혀 다른 일이다. 문화제는 보호를 받지만 가투는 보다 적극적인 공권력과의 싸움이고 현행법상 위법이다. 몇 십년간 집시법 개정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대중들은 침묵했고, 개정은 실패했다. 이것들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목을 향해 날라오고 있다. 연대의 실패는 이토록 뼈아프다.

가투는 무척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막는 공권력의 입장에선 이건 일종의 전쟁이다. 그들의 임무이고, 반드시 해내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의견 전달에 더해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험(잡힌다든가, 다친다든가)을 피하기 위해선 일종의 테크닉적인 요소와 행동 방침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전 가투 경험자들, 즉 운동권 출신들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노하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상태로 가투로 진화하는건 너무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공권력을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된다. 이건 매우 힘든 싸움이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기존 운동권에 대한 반감들이 모여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문화제였다는 점에서 여기엔 복잡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과정상으로 보자면 촛불 문화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결과의 측면에서도 원하는걸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하우가 없으면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된다. 군중은 쉽게 흥분하고, 막는 자들도 쉽게 흥분한다. 사람의 이성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그다지 믿을만한게 아니다. 만약 4.19나 6월 항쟁처럼 100만명씩 모여있다면, 아니 적어도 몇십만명쯤이 모여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것도 아니다.

어차피 참여자로서도 이젠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도 없고, 누군가 통제할 수 있는 성질도 애초에 아니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거리의 시민들이 더 거대한 대중들로부터 소외받지 않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열망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080519

혼잡 부담금 징수

서울시에서 시내 교통에 혼잡을 유발하는 몇몇 대형 업소를 출입하는 차량에 대해 4000원 정도의 부담금을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당히 전향적인 정책이긴 한데, 우리나라는 자동차 사용자들의 권리 의식이 매우 높은 편이고 이에 비해 보행자들의 권리 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라 반대가 심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권리 의식이라는 말은 정책에 대한 반발의 정도를 말한다.

나같은 경우는 육교, 지하도는 존재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돌아가려면 차나 돌아가지 사람이 왜 돌아가냐) 불편해 하면서도 딱히 반발이 많지는 않은게 참 이상하다. 하긴, 육교는 좀 없어졌다.

기본적으로 시내에 차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기 오염에 민감한 편인데다가, 석유 값도 천정 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는 현실에서 자동차 운행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정책에 찬성하고 있다. 정책이 얼만큼의 차량 통행을 줄일지의 실현 가능성이 문제긴 한데 4000원은 좀 애매하긴 하다.

얼마전에 뉴욕 타임즈를 뒤적이다가 미국에서도 요새 기름값이 하도 올라 대중 교통 이용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나마 뉴욕이나 보스톤같은 대중 교통 체계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아직은 괜찮은데 서부와 남부의 driving 중심의 도시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정책이 시행되기 위해선 선결되어야할 보완적인 문제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정책이 공청회 없이 결정되고, 일단 내지르기만 하고 보완책들이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버리는 듯 싶다. 아마도 빨랑 빨랑 해야되~ 라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각나는데로 말하자면 우선 아이를 데려와야할 부모 문제. 우리나라의 보육 시설 체계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고, 미취학 아동들이 있는 부모의 경우 집에다 홀로 내던져놓고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복잡한 시내 대중 교통 상황상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게 쉽지가 않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유아 보육 체계를 개선시켜나가는게 중요하겠지만 그게 당장 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게 중요할 듯 싶다. 어린이 놀이방을 강제적으로 운용하게 한다든가, 아이가 있는 경우는 면제해 준다든가 하는 방안은 필요할 거 같다.

이는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하도 아무 차에나 장애인 스티커 붙이고 다니는 인간들이 많아서 그 정책의 실효성 확보도 중요한 일일게다.

이런 것들은 보면 사실 백화점 셔틀 버스의 부활도 생각할 만하다. 예전에는 서울의 버스 업체가 완전 사영이라 그 압력으로 백화점 셔틀 버스가 사라졌지만, 버스 전용 차선제 생기면서 시에서 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준 공영으로 운영되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백화점에서야 손님 늘리려면 알아서 버스는 굴릴테니, 이왕이면 사용하는 버스를 천연가스로 강제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거 같다. 미국과는 다르게 여기는 상당히 밀집된 도시라는걸 염두에 두어야한다.


사실 좀 더 넓히면 자동차나 기름에 붙는 세금도 덴마크나 벨기에 수준으로 더 올렸으면 하고, 배기량에 따른 누진세도 적용했으면 하고 바라기는 한다. 이럴 경우엔 자동차를 이용해 생계 활동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된다. 이걸 해결하려면 등록제, 허가제 등을 통한 면세나 감세같은 여러 방법이 있을텐데 이것도 저렴하게 해놓고 관리 소홀하면 역시나 사기치는 사람들이 잔뜩 생기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걷은 세금으로 자전거 도로나 보행자 통로도 좀 잘 만들면 좋은데 경쟁력 운운하며 도로 만드는데만 돈을 쏟아붓고 있는것도 안타깝다. 여행 나가서 지방 돌아다니다보면 요새는 황당할 정도로 도로를 잔뜩 만들어놨다. 몇대 다니지도 않는 길을 구불 거린다고 길 펴서 하나 만들고, 길 폈는데 좁다고 또 만들고... 경북 산길에 만들어진 새 지방도를 두시간정도 달리면서 건너편에서 오는 차 딱 두대 본적도 있다.

운송업 종사자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생각하면 이런건 통으로 국가나 지방 정부에서 아예 운송 공기업 같은걸 만들어서 운영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운송료 가격이 오를테고 (저가로 때려치는게 힘들어지니까) 대번 대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니까 어렵긴 하다.

하여간 이 나라는 제값 내는걸 과다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업자들이 참 많고, 정부는 사람들이 잘 살도록 노력하는것보다 GDP 순위 한칸 올라가는걸 더 좋아하니 그것 참. 잘 모르겠다.

이와 더불어 오토매틱 - 매뉴얼 차량 문제도 관심이 많은데, 알다시피 오토매틱이 기름도 20%가량 더 쓰고 그러므로 매연도 20%가량이 더 나온다. 즉 지금 거리의 오토매틱 차량만 다 매뉴얼로 바꿔도 공기가 20%정도는 깨끗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홍보계획은 없나 싶다.

어쨋든 결론은, 기름 사용량 줄이는 것도 중요하고 매연 줄이는 것도 중요한데, 그렇다면 차 안타고도 잘 지낼 수 있게 만드는데도 방점을 좀 많이 두십사 하는 이야기다.

20080506

광우병에 대해 이런저런

촛불 집회 하는걸 가보고 싶기도 하고, 10대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왔다고 해서 그 모습도 한번 보고 싶은데 여러 사정으로 가보진 못하고 있다. 그 아쉬움에 관련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써본다.

이번 광우병 촛불 집회에 10대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걸 두고 '중간 고사가 끝나서 할일이 없어서 그런다'느니, '어린 학생들이 무방비로 인터넷에 현혹되고 있다'느니, '중학생들이 놀거리가 없어서 시위에 나오는거다'느니 하는 얼토당토 안해 보이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것도 찌라시 블로그나 포털 사이트 댓글도 아니고 청와대, 주류 언론사,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는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정치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누구가 되었던 시민은 정치의 주도자가 될 수 있고, 합당한 점이 있다면 여론으로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게 민주주의 아니었나?

이런 양반들의 정신 구조에는 정말 말문이 막힌다. 역사에게든, 시민에게든, 뭐가 주체가 되든 정말 크게 혼이 나야된다. 아니 그보다는 민주주의가 뭔지 공부를 먼저 시키는게 더 중요할 거 같다.


더불어 이번 광우병 문제에 대해 재미 교포나 유학생들의 언급 내용이 꽤 많이 전해져온다. 재미 한인회인가에서는 미국의 소고기가 안전하다는 기자회견인가를 했다고 들었고, 블로그나 포털 사이트에서 관련된 여러 글들을 심심찮게 읽을 수 있다.

내 생각엔 이건 아주 기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협상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곳에서 팔리는 소고기와 여기에서 팔겠다는 소고기는 다른 제품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같은 부분도 많이 있는데 '다른 것'들도 섞여서 들어온다. 문제가 되는건 '다른 것'이다.

아마도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들과 거주자들을 위해 최상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보다는 훨씬 나은 위생체계를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즉 미국내에서 팔리는 소고기는 위생적일테고 대부분의 경우 안전할 것이다.

이번에 뉴욕인가 무슨 균이 발견되어 각종 고기류에 대해 대규모 리콜이 있었다고 하던데 미국의 주정부들이 자국 시민들을 위해 재빠르고 과감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정부와 자치 단체가 시민들의 안전과 위생을 위해 노력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선진국 아닌가.

문제는 우리에게 팔겠다는건 그런 것들에 더해, 위험할 지도 모르는 제품도 함께 팔겠다는 거고, 그런 것들이 비록 평범한 시민들은 혹시 모르니 안먹고 말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건데 학교나 군대 등 대량 급식 체계 안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재미 교포나 유학생들이 미국 소고기 맛있고, 저렴하고, 안전하고 좋기만 한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라고 언급하시는건 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실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 되겠다.

이번 사건에서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건 우리 정부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과연 뭘 했는지 알고 싶어도 별로 보이는게 없다는 점이다. 나오는 반응이 겨우 '안 사먹으면 되지', 여기에 더 붙여 '민간에서 수입안하면 되지'라는건 발상 자체가 한심함의 수준을 저만치 넘어섰다.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민간이 아니라 국방부와 지방 교육청 같은 정부다. 그들이 군대 짬밥에, 학교 급식에 저 '다른 것'을 싸게 샀다고 신나하면서 넣을 까봐 걱정되는거다.

더구나 이런 발상 체계를 지닌 사람들이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나올지 대충 보이기 때문에 그 점이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무섭기까지 하다.

20080505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예전에도 말한적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 생각은 대화와 타협 따위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쪽에서 뭔가 내놓는 일은 없다는 믿음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기 마련이고 선거와 투표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 므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의 보장이다. 균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게 아니라 아래서 위로 치받아 올리면서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국가는 결국은 시민들이 함께 잘 살아보자고 만들어놓은 제도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나라의 발전을 대기업의 독점 강화 또는 GDP 올리기 게임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패러다임 자체에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 민들이 여러가지 입장을 가지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발을 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권력은 저 위에 집중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시민들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이해를 할 생각조차 없을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은 공안 정국화다. 이젠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코 앞에 돌아와있는거 같다.

반미 세력들이 소고기 수입문제를 정치 논리화 하는게 틀림없고, 누군가 이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광화문 촛불 집회에 대해 나온 반응은 전형적인 공안 음모론이다.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도 없는게 틀림없다.

최악의 가정이긴 하지만 이대로 나가단 정말 예전처럼 반미-친북 단체와의 연결 고리라느니 하며 간첩단 같은거 하나 만들어지는거 아냐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겐 여전히 국보법이 버티고 있다.

새 정부 등장 이후 뭔가 전향적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는거 아닌가 싶던 경찰이 (불법 집회에 대한 강력 대응 천명, 주민등록증 미 제시시 과태료 부과 추진 등등) 광화문 집회를 결국 불법 시위로 규정했다. 그리곤 단속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에도 시위같은거 있으면 주 메뉴가 국보법 철폐, 집시법 철폐였는데 이것들은 지금도 멀쩡히 살아있고, 똑같은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찰이 과연 불법 집회로 규정해 과잉 진압에 나설까?
만약 그런 경우 예 전같은 세력 규합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대학은 제쳐놓더라도 시민 단체와 노조는 어떻게 움직일까? 현재 소고기 수입 문제로 잘 안보이지만 의료 보험, 수도 민영화등의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감축, 상속세, 법인세 폐지에 맞물린 간접세 증세, 전반적인 복지 축소 등 수도 없이 많은 문제가 맞물려있다.

정말로 암담하게 전개될지도 모른다. 10년간의 야당 시절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 예전에 쿤이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패러다임이 다른 상태에선 설득은 불가능하고(둘간의 논리 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방법은 개종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개종시켜 줄 수 있을까. 번지르르한 큰 건축물들 좋아하고, 그게 나라 발전이라고 착각하는 양반들이 나라를 통으로 말아먹고 있다.

20080502

테이크 잇 이지

사파리를 사용해 블로거 닷 컴에 처음으로 뭔가 써본다. 왠지 즐겁군.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