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9

논쟁

간밤에 트위터에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나우콤 문용식 대표 간에 논쟁이 잠깐 있었나보다. 찾아봤는데 딱히 결이 두터운 논쟁은 아니라 그 자체에서 생각할 만한 거리가 많이 있는 건 아니다. 복지 -> 반말 크리 -> 좌파 크리 -> 조롱 크리 -> 분노 크리 -> 사회가 멍들어요 크리 등등 그냥 되는데로 통통 튀었다.

문용식 대표가 아니라 진짜 SSM이 옆에 들어선 슈퍼 주인이었다면 약간 더 리얼함이 보태졌겠지만 논쟁은 반드시 당사자여야지 성립되는 건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가가 아니었고 마르크스도 노동자가 아니었다.

이 논쟁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불만 투성이이 좌파가 잘나가는 사람에게 틱틱 말을 내뱉었다고 볼 수도 있고, 매판 자본가 혹은 신자유주의자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잠깐 일면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쨋든 이 둘 사이는 서있는 자리가 다르고, 생각의 기반이 다르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지동설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했듯이 패러다임이 다른 경우 설득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직 개종 만이 가능할 뿐이다. 위 경우도 설득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입장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협상과 타협이 가능하기 때문에 논쟁은 필요하다. 위 트위터 논쟁의 경우 양자 간의 편협한 인식은 협상과 타협의 여지도 없다.

다른 이야기. 많은 사람이 예의를 이야기한다. 문대표는 예의 없이 반말 크리를 작렬했다. 미시적인 예의다. 하지만 예의는 사람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대한 태도에도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는 사실 이쪽이 파급력도 훨씬 크다.

지역의 반대가 너무나 귀찮다보니 정부회장네 회사는 몰래 몰래 조용히 개점하고 있다. 피자집이나 동네 슈퍼처럼 중소규모 업자들이 가장 많은, 말하자면 프로 vs 아마츄어의 싸움처럼 너무나 손쉬운 분야들을 속속들이 공략하고 있다. 더구나 사회에 대한 낮은 예의 수준은 미치는 파장력마저 너무 크다.




사실 마트 문제에 대해선 생각할 것들이 많다. 우선은 대기업에 대해 SSM 등 분야에 대한 허가가 난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협상과 타협은 가능한 피하고 눈에 확 보이는 결과 지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대기업에 기대는 손쉬운 길을 가려고 한다. 지금와서 딱히 없애는 것도 그러니 누진세를 강화하면 된다. 이왕이면 지방세로 신설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리고 중소 소매 업장 역시 자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자체 규제가 - 지금까지 보아왔지만 - 거의 불가능하니 지자체의 규제, 규제라는 말이 마음에 안든다면 구속력있는 표준 서비스 매뉴얼이라도 장만하는 방법 정도가 있을거 같다. 사실은 Co-Op이 괜찮은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하겠지만 우리 현실에서 갈 길이 아직은 좀 멀어보인다.

20101022

권리 침해 문제

이글루스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http://coldice.egloos.com/2667054

간단히 요약하면 퀴즈노스 코리아에는 샌드위치의 염분 함유량이 적혀있지 않은데, 그래서 미국 홈페이지에서 염분량을 찾아 결론적으로 참 많이 들었더라라는 포스팅을 했다. 그랬더니 퀴즈노스 코리아에서 이미지 훼손으로 권리 침해를 신고했고, 이글루스를 운영하는 SK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비공개 처리했다.

이런 일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딱히 퀴즈노스 코리아, 이글루스라고 적시할 필요도 별로 없이 앞에 기업 이름, 뒤의 포털/블로그 회사 이름을 바꿔 대입하면 무수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이게 좀 웃긴게 우선 권리 침해 요청이 들어왔을때 삭제 여부는 사이트 운영 주체의 책임이다. 기업과 포스팅한 사람 사이의 일인데 중간에 사이트 운영 주체가 개입되어 있고, 기업은 사이트 운영 주체를 통해 일을 처리한다.

왜 그 사이에 있을 수 있었던 합의나 해명의 절차를 생략해 버렸을까. 굳이 저렇게 하지 않아도 퀴즈노스 코리아도 블로그 하나 쯤은 운영하고 있을테고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지는게 있다면 트랙백 하나 걸어 해명을 할 수도 있었을거다.

하지만 퀴즈노스도 그렇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런 절차 없이 곧바로 사이트 운영 주체에게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사이트 운영자는 거의 예외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형법을 제외하고 법의 규율이라는건 어디까지나 사적 자치가 우선이고 그런 합의에 실패하거나 불가능해 보일때 찾아가는 수단이다. 하지만 법의 규율은 엄격하고, 그것보다 상당히 귀찮기 때문에 그런 귀찮음의 힘에 기대어 기업들은 손쉬운 수단을 택한다.

이건 기존 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가능한 이런 손쉬운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또는 어렵게 만들어놨어야 한다. 그런 규율이 없다고 해도 손쉽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마인드는 소비재 사업자의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블로거 한 명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소비자 만족을 운운하나.



또 하나는 소명 절차다. 보통 개인과 기업 간의 법적 다툼에는 입증 책임의 전환이라는 논리가 적용된다. 환경 문제라든가, 이런 소비자 권리 문제 등에서 특히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어떤 공장 옆에 있는 강에서 카드뮴이 나왔어요 하면, 그 카드뮴이 공장에서 나온거라는 증명을 신고하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 공장에서 우리는 카드뮴을 낸 적이 없어요라고 증명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누군가 문제 제기를 하면 문제를 받은 사람이 그걸 증명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위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문제 제기 - 블라인드 처리 - 문제 제기한 사람이 증명해라 순서로 되어 있다. 문제 제기 - 해명 - 블라인드 처리가 더 맞는 순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거보다 더한 예는 지금 우리 나라가 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발생 - 어, 이거 좀 이상한데 해명 좀 해주라 - 너 북한 편이냐" 이런 수준의 논쟁이 오고가고 있다. 바로 어제 국감에서도 거의 비슷한 순서의 질답이 있었다. 뭔가 아주 구석구석까지 해괴해 지고 있다.

20101017

그냥 이야기

퍼스널한 이야기는 안쓴다고 했는데 바로 배반. 그런게 인생. 깝깝한 이야기 뿐이라 밝게 살고자 하시는 분은 안읽는게 정석.


뭔가 좀 그럴 듯 하게, 추상적으로 쓰고 싶은데 - 예를 들어 "어둡다, 대낮이다. 이봐, 힘을 아껴봐. 난 벌써 잉크가 떨어지고 있다"(기형도)라든가, "내 소원은 매독에 걸려 죽는 것"(장정일 - 뭔가 좀 더 길었던거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이라든가, 아니면 "실존이란 비실존에 젖어 있으며, 우표의 점선이 우표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비실존 역시 실존에게는 불가분"(장 그르니에) 같은 문장들 - 그러면 나와 글자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투박하게 상세히 뭔가 적고 있는 건 수레바퀴 밑에서 따위(폄하의 의미 없음)를 읽고 있는 사춘기 소년같다. 결국은 글자들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선을 걷게 되고, 의미가 사라진다. 아니, 사실 의미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 자체에 있다. 그것말고 지금 내 행위의 어떤 부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관이나 쥐덫이 아닌 이상 어딘가로 들어가면 다시 나와야 하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게시하기라는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완성된다. 별 쓸데 없는 이야기들로 인터넷 세상이 채워져도, 할 수 없다. 낭비는 숙명이다.

둔탁하다. 머리가 둔탁하다. 뇌 속이 스폰지같은 걸로 차오르는 거 같다. 산뜻한 기분을 느낀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스폰지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오마메(하루키)가 자기 뱃속에 들어있는 존재를 갑자기 느꼈듯이, 무한도전에서 텔레파시를 받은 정형돈이 갑자기 고양시 체육관?을 되뇌였듯이. 하지만 나는 감과 상상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꽤 긴 시간을 둘을 섞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뭔가 막 쓰고 있으면, 그 순간 만큼은 다 잊어버린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망각. 누군가 멀리서 문을 쿵쿵 두드린다. 차가 지나간다. 고등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한다.

호포읍 이야기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