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9

지역의 유래, 옛날 지도

몇 번 말했지만 지역의 유래... 지형의 예전 모습... 찾아보는 걸 좀 좋아한다. 여튼 중랑천에 있는 월릉교가 월계-태릉이라길래 찾아봤더니 월계-공릉이었다. 근데 공릉이 공덕리 + 태릉에서 나온 말로 결국 공릉의 릉이 태릉이니까 월릉의 릉도 태릉이다... 그러면서 네이버 사전 등등을 좀 찾아봤는데 고지도가 몇 개 나온 데가 있었다.



잘 안보이는데... 위 지도는 조선지형도라고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다. 도서관 찾아보니 출간본(1990년)이 있긴 한데 요새 참고도서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라 볼 수는 없었다.

가운데에 보면 상봉리가 보이고 그 위에 봉화산이 있다. 봉화산 오른쪽에 보면 내동이라는 곳이 보이고 신내리라는 이름도 보인다. 신내동이 1914년에 신현리와 내동리(+능내리, 직곡리 등등)가 합쳐져서 붙은 이름이니까 위 지도는 1914년 이후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오른쪽 맨 위에 양원리 그 아래에 망우리가 보인다.

가운데에 길게 나 있는 도로는 상봉동, 망우동을 거쳐 구리로 가는 길이다. 지금도 물론 있고 6번 국도. 6번 국도는 인천역에서 시작해 저기를 지나 강릉시 연곡 교차로까지 280km 정도 이어지는 동서 횡단 도로다. 참고로 종로도 6번 국도다. 그리고 저 노선은 안산에서 철원으로 가는 47번 국도와 겹친다. 47번은 6번 국도와 겹치다가 상봉 지나 신내 쪽에서 갈라져 북쪽으로 올라가는 데 위 지도에 보면 그런 길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내리라고 적혀 있는 곳 옆에 길을 따라 올라가면 뭐 철원까지 갈 수 있을 거다.

가운데 왼쪽 위아래로 중랑천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철길 표시가 되어 있는데 경원본선이라고 적혀있다. 용산에서 원산으로 가는 기차길이다. 1910년에 착공해 1911년에 용산-의정부 노선이 완공되었으니 여튼 1911년 이후 지도라는 걸 또 알 수 있다.

성북역(지금은 광운대역)에서 오른쪽으로 나와서 화랑대역을 지나가는 경춘선이 1939년에 개통되었는데 있다면 저 지도 바로 위에 표시가 되어있을 거 같다. 찾아보니까 저 지도는 1918년 쯤 만들어진 걸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아마 없을거다.

지금 먹골역, 중화역이 있는 곳은 위 지도를 보면 다 논이었다.



이건 대동여지도. 가운데 속계라고 적혀 있는 데가 중랑천이다. 오른쪽으로 수락산과 검암산이 보인다. 사실 검암산은 지금은 구릉산이라고 부르는 조막만한 산으로 올라다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지금 나 사는 곳 바로 뒤에 있는 산이라 산책 겸해서 몇 번 올라간 적이 있다. 그보다는 수락산과 검암산 사이에 있는 불암산이 훨씬 높고 등산으로는 더 인기가 많다. 그렇지만 동구릉이 있는 산이라 표시된 거 같다. 지금은 정상에 올라가 보면(완전 정상은 부대가 있어서 못 올라간다) 군부대 철책과 동구릉 철책 사이로 난 길을 지나갈 수 있다.

왼쪽에 있는 게 삼각산이면 왼쪽 아래 동그란 데가 사대문, 종로길이라는 이야기인데... 저 지도만 가지고 길을 찾아 가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다.



이건 해동지도. 이 지도는 글자가 잘 안보이는데... 왼쪽 아래에 보면 동십리라는 곳이 있다. 동쪽 십리, 지금 돌곶이 = 석관동 지역이다. 그렇다면 그 오른쪽에 보이는 게 중랑천이라는 이야기다. 맨 오른쪽에 커다란 산이 동구릉인 듯 한데... 잘 모르겠다.

여튼 이렇게 옛날 지도 구경은 끝...

20160628

우보천리

우보천리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뜻이다. 2016년의 우보천리란 컴퓨터를 켜고, 조금 있다가 외장 하드를 켜고(이상하게 초기 화면이 지나가기 전에 외장 하드를 켜두면 부팅이 되지 않는다. CMOS에서 부팅 하드 지정도 해놨는데도 마찬가지다), 크롬을 열고, 구글 독스를 열고, 가까스로 문서를 열어 다섯 줄을 썼는데 컴퓨터가 꺼져도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자동 저장이 되어 있기를 기원하며, 묵묵히 외장 하드를 끄고 다시 컴퓨터를 켜 위의 일을 반복해 가며 원고를 써 가는 일을 말한다... 컴퓨터 사야 해...

20160613

분노와 홧병, 듀엣 가요제

1. 일요일에 인터넷이 잘 안되는 곳에 8시간 정도 있다보니 그냥 세상 돌아가는 거를 잊고 있다가 다시 네트워크 망으로 돌아오며 뉴스를 확인해 보니 올란도에서 커다란 총기 사건이 일어났고 사망자가 20명이었다가 집에 오는 길에 50명으로 늘어났다.

1차,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베트남, 이라크 같은 커다란 전쟁의 시대가 끝이 났고(이제는 그런 류의 전쟁은 시작이 되면 아마 다 끝날 거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과 요구는 늘어났는데 그 레벨이 다들 너무 다르고 조화의 방식은 개발이 더디다. 결국 이런 방향은 국소 분쟁, 특히 테러 같은 인터넷 바이럴 용 범죄만 늘어나고 있다. 과연 이런 길에는 당장의 대책이 없는 건가. 어떻게 하면 인류가 가지고 있는 분노와 홧병의 총량이 줄어들고 다들 정신을 좀 차리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2. 어떻게 하다가 듀엣 가요제를 몇 편 봤다. 아마츄어 지망자와 프로 가수가 팀을 이뤄 듀엣곡을 부르는 경연이다. 경연도, 아마츄어가 나오는 방송도 보지 않지만 여튼 볼 기회가 생겼고 피할 방법도 없었기에 보게 되었다. 이런 방송은 퀄리티 유지가 중요한데 꽤 잘해나가고 있고 그 중심에 산들과 조선영 듀엣이 있다. 이 두 분의 조합은 꽤나 적절하고 듀엣 가요제라는 방송의 테마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예컨대 노래로만 보자면 린과 듀엣한 분이나 어린이 뮤지컬하는 분이 훨씬 잘하고 아마츄어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산들과 듀엣을 하는 조선영 씨는 매우 잘하는 아마츄어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곡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이 중요하다. 결국 실력이나 목소리라는 건 악기나 기계처럼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써먹느냐에 달린 거다. 여하튼 방송도 그렇고 무슨 일이든 좋은 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의도든 우연이든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산들 말고 눈에 띄는 사람은 라디. 이 분이 좀 더 본격적으로 프로듀스를 하면 좋지 않을까. 걸그룹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호포읍 이야기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