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 주민이 된 이후 시간이 날 때 마다 구(區) 레벨 떡볶이집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어제는 조건이 매우 안 좋았다.
1. 아침부터 연어 샐러드가 먹고 싶어,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 해대면서 맛없는 밥만 급하게 먹어댔더니 약간 채했다. 그래서 가스활명수를 3개나 먹었다.
2. 다이소에 뭔가 살 게 있어서 들렀다가(망우 2점이라고 3층짜리 매우 큰 다이소가 있다) 금란교회 뒤까지 걸어갔다.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대신 아주 더웠다. 아주 아주 더웠다. 기분이 나빠지는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고 온 몸이 끈적거리면서 열이 났다.
3. 가게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8시 반 쯤이었는데 에어컨이 없어서 무더위 속에서 떡볶이를 먹을 가능성도 있었고(작은 가게들이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그냥 아예 문이 닫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 괜찮은 데 맛이 없을 수도 있다. 이게 제일 문제다. 여하튼 가는 동안 더운데 다음에 좀 일찍 올까 계속 고민했다.
4. 단 맛이 많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 튀김을 떡볶이에 끼얹어 먹지 않는다(튀김은 바삭한 맛으로 먹는 거다) + 김말이를 좋아하지 않는다(특유의 냄새가 싫다). 하지만 찾아가는 곳은 이 모든 게 디폴트다.
하지만 결국 찾아갔다. 사실 너무 더워서 뒤돌아 돌아가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너무 짜증이 나면 생각이 없어지고 처음에 입력된 고정치 명령을 계속 수행하게 된다.
문은 열려 있었고(대략 9시까지 영업), 에어컨도 가동 중이었다(아주 시원하진 않았지만 견딜 만 했다). 금란교회 뒷편 떡볶이 골목(이라고 하기엔 좀 초라하지만)이라는 곳에 떡볶이집 몇 곳이 영업 중인데 찾아간 홍이네가 가장 유명한 거 같다.
떡볶이를 시키면 저 사진이 디폴트 세팅이다. 나온 그대로 찍은 사진이다. 밀가루 떡볶이고 1인분에 2천원. 옆자리를 보니 2인분을 시키면 그릇에 두 배 담아주는 게 아니라 저 접시를 두 개 준다. 그렇다! 그래야 되는거다!
사실 사전 정보로 저렇게만 시킬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들어와서 김말이와 만두를 빼고 떡볶이만 달라고 시켰다. 그것도 되나보다. 하지만 저게 디폴트이고 저걸로 유명해졌으니 역시 저걸 먹어봐야 한다. 위에 오뎅은 1천원.
옛날 스타일인데 여튼 맛있다. 더워서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단 맛이 강하고 약간 가벼운 타입인데 조화로운 매운 맛 덕분에 거부감이 없다. 오뎅도 좋다. 떡볶이도 오뎅도 특유의 냄새를 정말 잘 제거했고 파도 아삭아삭 씹힌다. 김말이와 만두도 이상하게 거부감이 안 든다. 조화와 냄새 제거의 승리다. 매우 훌륭하다! 간만에 좋은 곳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