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8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크게 봐서 문제가 되는 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진영 논리의 측면에서 앞뒤 가리질 못하는 미친 자들이고 또 하나는 리터럴리 미친 자들이다. 전자는 사회 자본의 미비 및 축적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과 일종의 파시즘과 연결이 된다. 이건 매우 맥락이 크기 때문에 여기선 후자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이어폰 없이 방송 등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 애초에 생각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할 줄 안다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 그러므로 생각을 안 한다는 소리다 -> 결론적으로 미친 자.

그런 소소한 일이 뭔 별일이라고 할 지 몰라도 이건 패턴 상 꽤 정확한 신호다. 주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는 중요한 건 무시하고 소소한 건 엄중한 주제에 이런 쪽으로는 상당히 엉뚱하게 보이는 온정 주의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전혀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옆에서 제제하는 것보다는 치료가 더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 미친 자를 보며 개탄을 해야 하는 데 현실적으로는 시끄럽기 때문에 제제를 가하게 된다. 결국 치료는 뒤로 미뤄지고 병은 더 커진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저런 사람을 미친 자로 보는 콘센서스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친"의 정의가 미비하고 쉽게 보니 생겨난 일이다. 어서 이런 부분이 사회적 합의가 되어 저런 사람들을 미친 자를 보는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 다음은 함께 걱정하며 치료 방법을 찾아나설 일이다.

사실 비슷한 형태의 사회 안에서 미친 자의 비율은 어느 곳이나 거의 비슷할 거라고 예상된다. 문제는 미친 자가 세상에 드러나는 비율과 그걸 처리해 내는 방식이다. 조금 미친 거 같더라도 그걸 방치하는 건 더 크게 미칠 수 있다는 점과 주변에 악영향을 미친 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제에 강제 수용, 강제 치료 등을 동원하는 건 형평에 어긋난다.

결국 이건 공교육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아주 작은 부분을 방치하는 게 큰 병이 되고 있다. 이 사회는 통으로 사회 자체가 만들어 내는 충격 그 자체 만으로 PTSD에 걸려 있는 건지도 모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