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가정은 문제를 만들어 낸다. 간단히 말해 알고보니 이러이러하게 생기지 않은 경우가 많고 게다가 이렇게 뒤져보니 그렇게 새로운 방식도 아닌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접근에서 어디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오류를 막을 수 있을까.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건 사전에 모든 경우를 다 검토해 보는 거다. 이를 통해 어떻게 생겼는지 조금 더 선명한 시선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케이스는 주변과의 거리, 주변의 구성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자료 조사자 자체의 한계가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러면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또한 모든 케이스를 다 조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구석에서 어떤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케이스는 주변과의 거리, 주변의 구성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자료 조사자 자체의 한계가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러면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또한 모든 케이스를 다 조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구석에서 어떤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즉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필요한 건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는 능력 또는 필요한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다.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같은 대답을 하려면 그냥 남이 대답한 걸 읽고 지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즉 그런 질문은 애당초 답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필요한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패션의 특징 중에 이런 경우가 많은 데 많은 이들이 뭔가 새로운 걸 보고 입고 자극을 받고 싶어하지만 사실 새로운 게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아니 그게 무엇인지 자체도 잘 모른다. 그걸 알고 있다면 패션 디자이너나 예술가 같은 게 되면 좋을 거 같다. 아무튼 보통은 뭔가 세상에 나온 걸 보면 그때야 비로소 아, 내가 저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기 마련이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고 뭔가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경우 그런 분야가 있었다는 것조차 잘 모르다가 어떤 계기로든 접하고 나면 구획이 생겨나고, 특유의 방식을 알게 된다. 즉 머리 속에 비어 있던 황무지 부분에 밭갈이를 해서 뭔가 심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게 되는 기분과 비슷할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보면 첫번째 의견을 던진 케이스를 마주한 경우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 게 맞을 지 답이 생겨난다. 또한 세 번째 단락에 기대 지금 이 글도 시간을 낭비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답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