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적어도 내게 있어 모든게 바뀐건 1993년인가 1994년인가 EBS에서 장 뤽 고다르 특집 시리즈(그런걸 TV에서 틀던 시절이 있었다)으로 방영된 Made in U.S.A를 보면서부터다. 창밖으로 들어오던 햇빛이 꽤 괜찮았던 어느 오후.
멋도 모르고 보기 시작한 영화에 나오는 그 생경한 화면과 색상, 그 생경한 소리들. 그 전까지 잘 짜여진 내러티브 중심의 스토리 텔링 영화(흔히 헐리우드 영화라고 불리는)에 익숙해있던 나는 그 영화를 통해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된다.
영화는 줄거리만 전달하는 매체는 분명히 아니다. 화면이 나오고, 소리가 들리고, 미장센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각자 각자 영화를 위해 존재한다. 단지 줄거리를 영상으로 이야기해 주기 위해 120분어치 필름을 쓰는건 아무리 봐도 낭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역시 Made in U.S.A였다. 경음악, 클래식의 멜로디컬한 세계를 지나 락앤롤과 헤비메틀을 만나 리프와 리듬에 몰두하고 있던 시절 그 이상한 소음들(소닉 유스였다)은 음악을 듣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크게 성숙하진 못했지만 둘러싸고 있던 기존의 틀로부터 약간의 자유를 얻은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의미를 부여한다.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적어도 편견으로부터는 떨어져나가기 위해 애쓰게 된다.
기껏해야 새로운 즐거움을 몇개 더 얻기 위한 음악과 영화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방가르드 영화로서 Made in U.S,A는 그토록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브레송과 오종, 트뤼포와 워홀, 그리너웨이와 베르히만, 그리고 할 하틀리 등등 꽤 많은 감독들의 불같이 훌륭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러나, 처음의 충격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마리앵바드 정도가 있으려나.
파시즘의 시절이 끝나고 이태리 지식인들은 알프스 산 아래 모여 기존의 틀을 문화 전선으로부터 흔들어보고자 63그룹이란걸 만들었다. 2차 대전의 후유증이라고 할만한 드골이 점점 도를 더해가던 시절 푸코와 데리다는 68세대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마구 흔들어댔다.
기존의 틀이 지닌 거대한 담론은 거기 안에 이미 속해 있는 사람들로서는 쉽게 흔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잘못 만들어져버린 루틴 안에서 멋대로 떨어져 나오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두명은 떨어져 나올수 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군부의 시절이 지나갔다. 그게 93년이니까 벌써 15년 전이다. 그 시절과 지금 바뀐건 대체 뭘까. 우리를, 그리고 세상을 둘러싼 환경은 완전히 뒤바뀌고 있는데 우리들 머리 속은 과연 그걸 따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버스가 오면 타고, 신자유주의 버스가 오니 또 탄다. 다음 정거장을 향해 이게 대세라고 믿고, 믿지 않는 자들을 배척한다. 자신이 못 알아보는 것들에 대한 적개심들이 넘쳐 흐른다.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해체를 외친 이유는 다 쓸데 없으니까 분해해보자가 아니었다. 제국주의의 모더니즘과 레비스트로스 이후 이어져온 구조주의의 그 견고한 틀 위에서 아무리 조금씩, 조금씩 고쳐봐야 이미 길이 틀려버린걸 바꿀 수 없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위해, 그들은 루틴을 뒤흔들어버릴 작정을 했고, 언어와 사상은 분해되버렸다. 물론 이 순진한 아저씨들은 나중에 마음껏 이용당해 버렸지만.
누군가 버스를 흔들어야 하고, 우리에게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멀쩡히 붙어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우리를 흔들 수 있는건 지금으로선 문화쪽 밖에 보이지 않고, 아마도 아방가르드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나는 우리의 문학과 예술계를 빤히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결국은 거기서 뭔가 나와야 한다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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