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그럴 때 나오는 노선도를 포함한 귀가 루트가 하나 있다. 좀 예전에 등장했고 몇 번 반복되면서 약간씩 구체적이 되었다. 상당히 복합적인데 기차도 타야하고(의정부-신탄리의 경원선 비슷한 느낌이다), 버스도 타야하고(세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어느 쪽은 빠른데 일찍 끊기고 어느 쪽은 느린데 좀 오랫동안 있는 식이다, 잠실 어딘가 분위기고 버스는 꽤 털털 거린다) 뭐 그런 거다. 지도도 있다.
이런 루트가 머리 속에 들어있는 여타 다양한 노선도들과 함께 잔존해 있다. 사실 딱히 별 생각은 없었는데 어제 갑자기 자다가 깨서 문득 내가 그런 노선도를 알고 있지 - 그것은 실재하는가 - 꿈 전용이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 속에 잔존해 있는 건 일부러 끄집어 내 기억을 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부산역에 도착해 해운대로 지하철을 타고 갈 거면 서면에서 갈아타야 하고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걸 기억하고 있지만 그런 걸 매번 떠올려서 그게 맞나 확인하지는 않는다. 기억 속 어딘가에 수납되어 있다가 상황이 되었을 때 기억 속에서 올라올 뿐이다. 귀가 노선과 부산 노선은 기억 속에서 아무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언제 이끌려 올라오는 지, 그게 실재인지 가상인지가 다를 뿐이다. 저 귀가 루트도 같은 방식으로 기억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실재인지 가상인지 굳이 확인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과연 이런 식으로 가상의 무엇인가가 체계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기억이 또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