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를 보는데 이경규가 서호주에 갔을 때 처음으로 은하수를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남격에서 갔을 때 봤나보다. 사실 좀 이상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젊을 적에는 바쁘게 사느라 못 본 거겠지. 어렸을 때 서울 살았지만 은하수를 자주 봤다. 별 보는 거 좋아해서 그 달의 별자리 지도가 그려져있는 과학동아를 들고 옥상가서 매번 하늘을 봤었다. 은하수라는 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질리지 않는 파도와 약간 다르다. 둘 다 무력감을 느끼게 할 만큼 멋지다는 건 같다.
여하튼 별의 강이라는 게 전혀 빈말이 아니다. 서호주만큼 선명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잠실 옥상에서도 충분히 정말 장관이다라고 느낄 수 있을만큼 보였다. 여름 방학 때 장판들고 옥상에 올라가 멍하니 쳐다보다 잠들었었지. 지금은 아무리 시골에 가도 그때처럼 압도적인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때 말고 인상적이었던 건 대학 때 서해의 섬에 갔을 때. 별똥별은 그때 처음 봤는데 정말 밤새 계속 떨어졌다. 하늘에서 돌덩이가 저리도 많이 떨어지나 생각했었다. 그 바다는 인이 많다나 어쨌대나 해서 밤 중에 바다물을 손으로 훑으면 형광 물질이 떠올랐다. 그건 신기하긴 했지만 예쁘다기 보다는 약간 기괴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바다에 대해 저 안에 뭐가 있을까 하는 종류의 약간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같이 봤던 친구 중 하나는 바다에 반해 다이빙을 취미로 삼게 되었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그 시커멓게 넘실거리는 거대한 물덩어리를 좋아한다.
최근 들어서는 가지산 자연 휴양림. 밤에 휴양림에 도착했는데 정말 별이 쏟아질 듯 흩뿌려져 있었다. 은하수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쏟아지는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거 매우 좋아한다. 또 하나는 승부역. 낮에 내리던 눈이 그치고 사방에 무릎 깊이만큼 가득 쌓여있는 밤이었는데 그새 구름이 싹 사라져 있었다. 달에 비쳐 하얗게 빛나는 눈과 산 위로 비치는 별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기차.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모여 있었다. 정말 죽고 싶은 날이었는데 그것들이 너무 좋아 넋놓고 바라보다가 살아 돌아왔다. 덕분에 이 고생이다.
20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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