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9

요즘은 왜 이러는지

1. 날씨가 이상하다. 파란 하늘에 햇빛이 쨍하니 내리 쬐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보면 비가 내리고 있다. 먹구름 몇개가 동실 동실 떠다니며 내키는대로 비를 뿌려댄다. 스마트폰 구입하면 제일 먼저 해보는게 날씨 어플 설치해 구경하는 거라는데 핸디 웨더라는 이 놈은 기상청 보다 더 못난 놈이다.

Screenshot0015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5&sid2=226&oid=008&aid=0002137993 다들 해외 이메일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3. http://maps.google.com/maps/ms?ie=UTF8&hl=en&t=p&msa=0&msid=106484775090296685271.0004681a37b713f6b5950&ll=22.22809,-111.357422&spn=35.796953,63.896484&z=4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돼지 인플루엔자였다가 지금은 SI로 이름이 바뀐 독감도 난리다. 이 병의 특징은 멕시코 인 외에 사망자가 없다는 점, 사망자가 모두 25세 이상의 성인 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독감을 생각해 보면(보통은 어린 아이와 노인이 취약하다) 이건 인플루엔자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이상한 놈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니 신경쓰지 말 것). 어쨋든 돼지 고기와는 별 관계 없다고 한다(별 관계가 있다는 생각도 사실 안든다, 무슨 단백질 변형도 아니고 바이러스인데)

4. 할 수 없이 폰 핵(hack)의 세계에 입문했다. KTF에서 Welcome to KTF… 라는 글자를 휴대폰에서 안보이게만 해 줬어도(뭐 자랑이라고 배경 화면에 반드시 보이게 만들어놨다) 이런 귀찮은 짓은 안했을 거다. 회사나 사람이나 쓰잘데 없는 짓을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다.

5. 오늘(4월 29일)은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가 5곳에서 있는 날이다. 내가 사는 곳은 해당 사항 없지만, 해당 지역에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부디 높은 투표율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치 중심의 사회와 경제 중심의 사회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중용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6. 방에서 책장 하나와 책상 하나를 내다 버려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 두고 있다. 널부러져 있는 안쓰는, 더구나 막 무너져내린 모습을 보면 깝깝하기는 한데 정말 귀찮아서 손도 못대겠다.



PS 선거 결과가 나왔다. 재보선 선거치고 투표율도 엉망으로 나오지는 않았고, 여당은 한 명도 안되었고 진보신당 후보 한 명이 당선되었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다. 화이튕!

20090420

미네르바 무죄

미네르바가 무죄를 받았다. 아직 1심이라 갈길이 멀기는 하다. 어쨋든 역사가 증명하듯이 세상에서 제일 못되고, 제일 못난 짓이 사람이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는걸 탄압하는 권력층이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오직 신 뿐이다.

20090410

조바심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날까.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날까. 남태평양 무인도의 뜨겁고 습한 곳에 디비져 누워, 북경 오리 구이 마냥 구워져 모래에 파뭍혀 서사모아 참다랑어의 먹이가 되고 싶구나.

20090408

전환기에 있어서 교육

*어제 우분투를 켜고 이걸 쓰다가 날려먹었다. 구글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자동 저장을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공민왕이 즉위했을 당시 고려는 원(몽고) 지배 하에 있었다. 막강한 원의 세력 덕분에 고려 내에서도 친원 세력과 권문 세가들의 보수 정치의 폐단이 만연해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폐단의 핵심은 토지의 점탈이다.

공민왕은 즉위 후 원의 연호, 관제를 폐지하고 내정 간섭을 하던 사법 기관 이문소를 폐지한다. 그리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을 숙청하고 원의 직속령이었던 쌍성총관부를 탈환한다. 이는 원이 세퇴해 가고 신진 국가인 명나라의 세력이 커지고 있는 당시 세계 정세를 읽은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론 친원파와 권문 세가들의 반발이 있었고 부인인 노국대장 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한 일도 겪는다. 공민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신돈을 기용해 개혁을 주도하게 한다. 신돈은 보수 세력이 불법 탈취한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 시키는 등의 개혁을 한다.

그리고 공민왕은 성균관을 다시 부흥시켜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래디컬한 사상이었던 성리학을 공부한 학자들을 무더기로 배출시킨다.

결국 개혁은 실패하는데 신돈의 악행과 공민왕의 실수 등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개혁을 뒷받침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나 신돈 같은 개인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무슨 개혁이든 적어도 위 아래 모든 계층의 1/3이라도 포섭하는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만이 있었다. 물론 이는 시민 교육을 의도적으로 등한시 시킨 원의 책략도 숨어있다. 우민 정책만큼 효과적인 개혁의 장애물은 없다. 공민왕은 실의에 빠져있다가 결국 시해당한다.

그리고 우왕이 즉위하고 극단적인 반동 보수 정치가 시작된다. 원의 쇠퇴와 함께 친원파 세력이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기존 권문 세력의 횡포는 제어가 불가능했다. 토지 겸병이 자행되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땅도 없다”는 말이 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 부흥하는 명을 적대시하고 망해가는 원을 가까이하는 시대 역행적인 외교를 펼친다.

이런 극단적인 보수 반동 정치는 공민왕 시절의 개혁 정치가 실패했던 원인 중 한가지인 공통된 마인드 형성에 이바지한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이 횡횡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성균관을 나온 개혁 성형의 학자들이다.

이렇게 혁명의 조건은 완벽히 갖춰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민중 혁명은 일어나지 못하는데 성균관을 나오는 부르주아들이 시민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왕조 개창에 성공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성계를 위시로 한 무장 세력의 도움이 컸다.

결국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우왕, 창왕을 차례로 내쫓고 공양왕 시기에 토지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양왕 2년에 옛 토지 대장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공양왕 3년에는 전격적으로 과전법을 실시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 개혁을 실시한다(북한은 광복이후 실시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392년 7월 17일 도평의사사의 인준으로 조선왕조를 개창한다.

 

**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혁명은 어느 정도의 세력 형성이 없으면 실패한다. 이건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의 이권을 위한 결집은 대단히 큰데 그에 대항하는 자들이 가질 모티베이션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순이 어지간히 커지지 않으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영미, 유럽권 국가들은 그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런건 전후 50여년이 지나고, 전후 세대가 주도가 되어 그런 모순의 극단화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자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인 사상을 등장시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개혁에 위아래 공통된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건 아주 소소한 이야기에도 응용할 수 있다. 모바일 산업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통신 3사의 담합에 익숙해져있는 대다수의 국내 소비자들은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사고의 틀에 얽메어 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생산자와 서비스 프로바이더)이 찔끔찔끔 보여주는 기술의 일면에 감탄하도록 인식이 재구성되어진다.

이런건 단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훨씬 치열해 할 수 없이 여러 기술을 미리 미리 내보내야 하는 영미, 유럽권 국가에서도 소비자들은 통신 요금이라는 벽 때문에 사고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게 무상으로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건 사실 필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치열한 경쟁 상황”이 그나마 소비자들의 편의를 더 좋게 만들어주고 있다.

20090406

약간의 변경

발전소 블로그를 약간 변경해봤다.

일단 템플릿(보통은 스킨이라고 하는데 구글 블로거에는 템플릿이라고 되어 있다)을 밝은 색으로 바꿨다. 좌우 간격이 픽스되어 있지 않은 놈인데 다른 OS나 브라우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템플릿에 대한 큰 상식이 없기 때문에 구글이 주는거 몇 개 중에 골라서 폰트 정도나 조금 건드려본 정도다.

그리고 이름에도 dynamic을 넣었다. 별 의미없는 행동으로 보일지 몰라도 어쨋든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요새 몸과 마음이 모두 디액티베이트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나마 액티베이트의 동기를 마련하고 싶다.

블로그 제목에 사진도 넣었다. 바탕화면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인 interfacelift.com에서 골랐고 너무 커서 약간 잘라냈다. 사진을 넣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는데 선택한 템플릿 자체가 심플한 모습은 맘에 드는데 블로그 제목, 글 내용 등을 거의 구분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내용의 가시성을 좀 높이고 싶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다지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내용보다는 스타일. 모르겠다.

아마도 눈에 안보일 변화를 말하자면 기존에 널부러져 있던 다른 블로그 두개에 있던 32개의 포스트가 이 안에 섞여 들어갔다. 별거 하는 것도 아닌데 소소하게 매니지먼트 할 수 있는 만큼만 손대기로 했다… 원래 그런 생각은 한참 전 부터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움직였다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내 정보 수집 능력 범위 내에서 발전소의 RSS 구독자 수가 현재 4명이다. 혹시나 이 블로그의 모습에 대해 작은 의견이라도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이 전 템플릿보다 나은지도 잘 모르겠고, 둘 다 이상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20090404

Mad bullying disease

Economist 2 April, 2009

북한이 이번 주에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고 북한 여성의 탈북을 도우려던 한국 남성 한명을 억류시켰다. 이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더 놀라운 일이 아래쪽 경계 넘어에서 있었다. 한국 검찰은 지난 주에 두번째로 큰 TV 방송국인 문화방송의 프로듀서와 24시간 뉴스 채널인 YTN의 노조원 네명을 체포했다.

전 농림부 장관과 그의 대리인이 2008년 4월 방송이 자신들을 비방했다고 고소했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사 프로그램인 PD 수첩의 이춘근 PD는 감옥에서 48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은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승수 총리는 방송의 잘못된 정보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수많은 거리 시위로 “한국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말했다. 체포 영장은 나머지 다섯명의 PD 수첩 기자들에게도 발부되었다. MBC 사원들 중 일부는 그들의 경찰이 비디오 테잎과 노트들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방송국 로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YTN의 노종면 노조 위원장과 다른 세명은 구본홍 사장의 출근을 막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YTN 노조는 정부가 작년에 임명한 구본홍 사장이 방송의 편집 독립권을 회손시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논쟁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노조 위원장의 구금에 대해 사원의 거의 반 정도가 파업에 참가했다. 앰네스트 인터내셔널은 그의 체포가 “정부가 한국의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늘어나고 있는 시도"들”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작년 다른 네개의 언론 그룹 - 가장 큰 방송국인 국가 소유의 KBS, 한국 방공 광고 공사, 아리랑 TV, Sky Life - 의 사장이 친 정부 인사로 교체되었다고 전했다.

현 여당은 인터넷에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일을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관리에 대해 조롱했다는 이유로 12월에는 블로거 박대성이 체포되었다. 그는 여전히 감옥에 있다. PD 수첩의 이춘근 PD는 “한국의 모든 언론인들이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 The Economist는 전통적으로 기자 이름도 직함도 쓰여있지 않다. 영국도 인터넷 자유 측면에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요새 듣는다(무슨 법인가가 통과되었든가, 통과된다든가 그렇다). 다들 갑갑한 일들 뿐이군.

20090403

4월 3일

제주도 4.3 항쟁이 1948년도 일이니까 벌써 60년이 넘게 지났다. 이 날부터 여수 순천 항쟁 사건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보여준 비극은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 일어났던 일을 단 하나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공산당 소탕’이라는 말로 모든걸 얼버무리며 자신의 죄를 덮기에 급급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4.3 항쟁을 몇 년 전 폭동이라고 보도했던 어떤 신문은 유족들에게 소송을 당했다가 1, 2심에서 패소했지만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20090402

이런 저런 일들에 얽혀서

두가지 생각을 정말 오래전부터 한번 포스팅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선희 복귀와 그에 대한 논란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한번 써본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미룬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정선희와 딱히 관계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그우먼이라는 말 대신 통칭 코미디언으로 쓴다. 코미디와 개그가 뭐가 다른가, 버라이어티와 코미디는 뭐가 다른가. 꽁트는? 만담은? 이런건 생략.

 

1.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굉장한 버라이어티 MC의 농담은 이경실이었다. 한참 전에 이경실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가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첫 방송을 봤었다. 뭐였는지는 생각안나고 상당히 많은 MC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강병규가 있었던건 기억난다.

어쨋든 보는 사람에게도 그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올 정도로 어색한, 다들 뭔가 쭈삣쭈삣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경실이 농담을 던졌는데 대충 내용이 자기가 입원해 있는데 다들 과일 통조림만 사오더라는, 골절에는 칼슘이 필요하지 과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었다. 당연하지만 그 한방에 분위기가 확 풀렸었다.

그때 보면서 프로페셔널 코메디언이란 역시 굉장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그토록 아픈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흘려보내는구나(물론 당사자 말고는 꺼낼 수 없는 이야기지만).

2. 이건 지금하고는 좀 안맞는 이야기지만. 여성 코미디언들이 맹활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코미디를 볼 때 부러운 점 중 하나는 탄탄한 여성 코미디언 층의 그 두께다.

물론 남성 코미디의 벽은 말도 못하게 두텁고(새로운, 능력있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렇게들 나타나는지 완전 화수분이다), 남/녀 비율이 엉망이지만(대략 9:1정도 아닐까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 자체가 많기 때문에(인구당 코미디언의 비율이 우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활동하는 여성 코미디언의 수도 많다.

이런 생각을 할 당시에는 뚜렷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박경림, 정선희, 김지선, 조혜련 정도였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박경림은 잠시 쉬지만 이외에도 박미선, 송은이, 신봉선, 김신영 등에다 기존의 김원희, 정시아 등 탤런트 출신도 곁들여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좀 시덥잖은 이야기가 되었다.

3. 어쨋든 정선희의 복귀를 기대한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코미디언이다.

두통, 공습, 직감

1. 주말에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월요일이 되니 비가 내린다. 날씨가 종잡을 수가 없어. 오늘은 왠지 머리가 아파서 집에서 일하는 중. 하지만 졸리다. 2.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이 있었다. 드론과 미사일을 상당히 많이 날렸고 대부분 요격되었다. 돌아가...